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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석갑산 선영 <국가사적 164호>

 

▣ 공식명칭 : 평거동 丁氏 고려고분군

▣ 지정번호 : 국가사적 164호

▣ 지정일자 : 1968년 12월19일

▣ 소 재 지  : 경남 진주시 평거동 산 44-2번지

▣ 규      모 : 면적 66,645 m2

▣ 시      대 : 고려시대 (서기 1079년-1229년)

▣ 개      요

◎ 진주시 평거동 석갑산에 자리잡고 있음.

◎ 석갑산 주변에는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시대 무덤들이 산재(散在)함.

◎ 형식이 특이한 고려고분군으로 호석(護石;묘소를 보호하기위해 기단부에 설치한 돌)에 기년각명(紀年刻銘: 연대를 새김)이 되어있고, 방형분(方形墳: 사각형 모양의 무덤양식) 6기로 구성되어있다.

◎ 각 무덤의 봉토(封土) 밑부분은 지대석(地臺石) 및 면석(面石)을 세우고 그 위에 갑석(甲石: 뚜껑돌)을 얹어 마치 석탑의 기단이나 탑신을 보는 듯 함.

◎ 이 고려 무덤은 우리나라 최고원로 고고학자 서울대 김원룡(金元龍)박사에 의해  고려 고분으로 밝혀져 1968년 국가사적 164호로 지정됨.

◎ 그리고 석면에 무덤의 주인공과 연대를 세겨 축조연대를 새겨놓아, 고려중.후기 진주지방의 호족인 압해(나주)丁氏 가족무덤으로 확인된 것임.

 

 

 

▣ 안장자

◎ 1호분 :

충효공 대상 휘 열(悅) 公(991-1079)의 묘이며 고려사에 기록이 있으며 배위(配位)는 금주(衿州) 姜氏이며 도원수 강감찬 장군의 따님이다. 둘레석에 ”元豐 2年10月1日 大相 丁悅之墓“라고 새겨 있으며 1079년(문종 34년)에 조성되어 6기의 고분중 가장 앞선다.

 

◎ 2호분 :

대상(大相) 휘 윤화 공(允樺: 1092-1165)의 묘임. 配는 정경부인 鄭씨 이며, 조성시기는 1165년(의종 20년)이다. 창원파, 의성파, 신녕거나주파의 선조이시다.

 

◎ 3호분 :

검교대장군 정공(丁公) 휘 윤종(允宗: 1093-1170)의 묘임. 配는 정경부인 黃씨 이며, 조성시기는 1170년으로 추정됨. 2호분 윤화 공의 동생이시며 나주파의 중시조이시다.

묘앞 비문에는 “대장정공윤종지묘(大將丁公允宗之墓)” 라고 적혀있다. 뒷면에는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 최세보(崔世輔)가 찬서(撰書)한 음기문(陰記文)이 있으며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실에 소장되어 있는 나주 초암공파 술선록(1751년 刊)과 1725年 刊 나주 고암공파 술선록(顧庵公派 述先錄)에 수록되어 있다.

 

◎ 4호분 :

도원수 정공(丁公) 휘 언진(彦眞:1133-1215)의 묘임.

윤화공의 손자이시며 혁황공의 차남으로 문무를 겸전한 고려의 명장으로 1202년 대장군이 되시고 1204년 경주민란을 평정하시고 도원수가 되셨고, 1215년(고종 3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 별세하심. 조성시기는 1215년이며 묘석에는 “가정8년 대상정언진의 묘”(嘉定 8年 丁彦眞之墓)라는 명문을 판독할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열전편,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등에 등재되어 있다.

 

◎ 5호분 :

13세 悅공의 장남으로 대상 정공(丁公) 휘 변(㭓: 1010-1107)의 묘임.

동쪽 둘레석에 “정해12월10일 대상정변 장(丁亥12月10日大相丁㭓葬)”이라고 새겨져 있고, 남쪽 호석(護石)에는 “영부인 정씨묘(令夫人鄭氏墓)"라고 새겨져 있다. 조성시기는 1107년(예종3년)이며 각면에 범자(梵字: 인도의 고대어)가 5字씩 새겨져 있다.  

 

◎ 6호분:

검교대장군 휘 윤종의 손자이며 휘 혁재공의 아드님으로 문하시중 정공 휘 양(良 : ?-1229)의 묘임. 둘레석에는 “소정원년 기축 정량의 묘“(紹定元年己丑丁良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조성시기는 1229년으로 6기의 고분중 가장 늦다.

 

▣ 진주에 세거(世居)하게된 연유

◎ 시조 대양군 휘 덕성공께서 당 선종때(853년) 군국 중대사에 대한 충직한 상소가 당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신라에 찬류(竄流)하여 압해도에 정착하신 후

◎ 신라조정 으로부터 장자 휘 열도(烈道)공은 오성군(영광)으로 차자인 휘 응도(應道)공은 금성군(나주)으로 봉군되셨고, 이어 금성군의 차자 필진공께서 의창군(창원)에 봉군되심으로

◎ 압해도와 경주사이에 교통(뱃길)의 요충지인 창원에 정착하신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로 창원 지개동 천주산 자락에 6世 광현公부터 10世 휘 윤하公까지 분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6世 광현공과 7世 우공만 묘셔져 있다. (시제일: 10월 둘째 일요일 칭원지개리 선영)

◎ 그후 11世부터 20世까지 지리적 요건이나 혼사등의 이유로 가까운 진주에도 세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보첩의 분묘기록) 그러나 표석이 뚜렷한 13世 정열 公부터 18세 정량 公까지 6기만 사적 164호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하고 매년 후손들이 시향을 모시고 있다.(시제일: 10월 4째 일요일 진주석갑산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