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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丁씨의 시조대양군(始祖大陽君)의 행적

 

우리 시조 대양군 휘 덕성(德盛)은 서기 800년에 당(唐)나라 등주(鄧州) 남양(南陽) 대천리 (大川里:지금 중국 하남성 남양시 당하현 대하둔) 정영(丁營)마을에서 태어나 최연소의 나이로 대과(大科)인 진사과(進士科)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고 장상(將相)의 재목을 뽑는 과거시험) 삼십명중 십구번째로 합격하여 태자궁 설서(說書)를 지내던 중 회서(淮西) 오원제(吳元濟)의 반란을 태자궁 첨사(詹事) 이소와 더불어 평정한 공으로 현백(縣伯)의 작위와 식읍 700호를 받고 승상(丞相)벼슬을 하다가, 당(唐) 선종시 국가의 중대사에 바른 말로 직언 상소한 것이 당시 조정의 노여움을 사서 853년 찬류(竄流), 아들 열도(烈道) 응도(應道) 손자 필랑(必琅) 필진(必珍)등 온 가족을 황하강에서 배에 싣고 황해바다를 건너, 압해도에 배를 맨 후 이곳에 정착하니, 당시 신라 조정에서 신라 서울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였으나 본국의 죄인이라 자처하며 굳이 사양하고, 또 본국에서도 입조(入朝) 권고의 칙서가 왔으나 "노약한 몸으로 배를 탈 수 없고, 이 나라도 예의 바른 나라이오니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게 하소서" 하며 893년 94세의 천수(天壽)를 누리고 생을 마치어 압해도 정승동에 안장하니 이로부터 시조묘를 이곳에 모시고 있다.   

 

 

시조대양군의 두 아드님과 두 손자

 

1. 오성군(筽城君)

오성군 휘 열도(烈道)공은 대양군의 장자로 문과등과(文科登科)후 요직을 거친 후,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을 지내던 중, 부친인 대양군을 모시고 신라(新羅)에 와서 신라에 큰 공을 세워 오성군(영광)에 봉군(封君)되었다.

묘는 압해 동서리 군암동(群岩洞) 자좌(子坐)에 안장되어 있다.

 

2. 금성군(錦城君)

금성군 휘 응도(應道)공은 대양군의 차남이며 문과와 중시에 장원하여 우부상서(右部尙書)를 지내다가 대양군을 모시고 신라에 오셔서 큰 공을 세워 금성군(나주)에 봉군(封君)되었다.

묘는 이 곳 정승동 좌강(左崗) 계좌(癸坐)에 안장되어 있다.

 

3. 태사공(太師公)

태사령 휘 필랑(必琅)공은 오성군의 계자(系子)요 생부(生父)인 금성군의 장자이며, 신라의 수뇌(首腦)인 태사령(太師令)을 맡아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정승동 좌강(左崗)에 안장되셨으나 실전(失傳)하여 군암동 오성군 묘하(墓下)에 초혼봉안(招魂奉安)하였다. 태사공의 후손이 영광 후창원파(派) 약 10만명이다.

※ 영광파 후창원파의 직계 선조이다.

 

4. 의창군(義昌君)

의창군 휘 필진(必珍)공은 금성군의 차남으로 신라 상장군으로 상장군(上將軍)으로 군사에 큰 공을 세워 의창(義昌)군에 봉군(封君)되시고, 묘는 정승동 우강(右崗) 임좌(壬坐)에 안장되었다.

의창군의 후손이 창원,의성,나주, 3파로 10만이 넘는다.

※ 창원파, 의성파, 신령파, 나주파의 직계 선조이다.

  

 

중국에 있는 정씨고총(丁氏古塚) 과 추모비(追慕碑)

 

한대정씨고총(漢代丁氏古塚)

소재지: 중국 하남성 남양시 당하현 대하둔 정영촌

 

당대양군정공덕성지추모비(唐大陽君丁公德城之追慕碑)

소재지 : 중국 하남성 남양시 당하현 대하둔 정영촌 / 입비년월일 : 2001년 11월 24일

 

원화10년(元和,815) 진사 30인 과방록(科榜錄), 현경등과기(顯慶登科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