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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始祖) 대양군(大陽君) 휘(諱) 덕성(德盛) 행장(行狀)

 

[ 역문 (譯文) ]

대양군(大陽君)의 성(姓)은 정씨(丁氏)요, 휘(諱)는 덕성(德盛)이니 본디 당나라 사람이라. 당덕종(唐德宗) 21년(정원(貞元)16년, 서기800년) 신라애장왕 원년(元年) 경진(庚辰) 10월 13일에 남양대천리란 마을에서 탄생하시어 배우지 않았어도 스스로 글뜻을 알았으며, 성경현전(聖經賢傳) 을 근독(勤讀)하여 눈으로 한번 보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고 기질(氣質)과 자품(姿稟)이 보통사람 보다 뛰어나서 헌종 원화(憲宗 元和)9년(서기 814년) 신라 헌덕왕 6년 갑오(甲午)에 등과하여 당시의 연령이 15세인지라. 같은 해 4월에 태자궁(太子宮)의 설서(說書)란 벼슬을 지내시고, 같은 달에 평장사부(平章事府)의 시랑(侍郞)으로 임명되셨고 5월에 진현 관(進賢館)의 부사(副士)란 벼슬을 얻고 8월에 대박사(大博士)를 지내셨다.

 

문종(文宗)때에 대상(大相)을 지내시고 무종(武宗)때에도 대상(大相)과 아울러 대양군(大陽君)의 봉(封)을 받으시니 임금의 은총(恩寵)이 문득 두터워져 생신날에 임금 무종(武宗)께서 대양군(大陽君)을 위하여 조신(朝臣)을 모아 연회(宴會)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 왕영(王英)에게 명하시어 대양군(大陽君)을 축하하는 송수(頌壽)의 시(詩)를 지어내도록 하시고 내인(內人:나인-임금을 시종(侍從)하는 시비(侍婢))으로 하여금 비단을 짜되 그 글로 비단에 문채(紋彩)를 만들게까지 하여 임금의 은총으로써 하사(下賜)하시니 그 시(詩)에 이르길 [남극(南極) 노인성(老人星)의 광채(光彩)가 남쪽 하늘에 빛나더니 그대의 집 대모연(玳瑁筵:대모로 만든 자리- 벼슬한 사람이 앉는 자리를 말함)에 비치어 보이네. 거룩한 행차는 멀리 타향 밖의 손님이 왔고 무지개 깃발은 반가이 여동중(呂洞中)같은 신선(神仙)을 인도(引導)했도다.

 

춘풍(春風)은 또한 선 경(仙境)의 과실을 익도록 하고 향기로운 눈빛은 일찌기 서왕모(西王母)의 연꽃을 피게 하도다. 비단 문채(文彩)로 오색(五色) 찬란한 시(詩)꽃을 짜내어 정승의 집 마루벽에 걸어서 무강수(無彊 壽)를 빌도다.] 다시 전천옹(全天翁)이란 사람이 또 비단으로 짠 시(詩)를 주며 그 축하해 가로되, [한 점(点)의 상서(祥瑞)로운 빛이 정승의 집에 가득 찼는데 그대의 집에는 오늘 헌수(獻壽)의 연회(宴會)가 열렸도다. 늙지 않고 오래 살며 기력 강력한 복은 모두 단청(丹靑)의 묘한 이치 속에서 옴이로다.] 하다. 선종(宣宗)때 또 대상(大相)에 오르셨고 대중(大中)7년(서기 853년) 신라 문성왕 15년에 당나라 조정(朝廷)에서 군대와 국사에 불리한 일이 있어 대양군(大陽君)이 직접 충직고견(忠直高見)의 상소(上疏)를 임금에게 올리니 이 글이 임금의 뜻에 거슬림을 입어 조선국 즉 신라로 찬류(竄流) 되어 압해(무안 압해면)에 도착하니, 때는 신라 헌안왕 15년(서기 853년)이며 대양군(大陽君)의 연세(年歲)는 54세인지라.

 

그 후 헌안왕이 국중(國中)으로 들어와서 살기를 청하였으나 대양군(大陽君)은 굳이 사양하며 대답하기를, [이미 당나라에서 죄를 얻은 몸이 무슨 면목으로 귀국중(貴國 中)에 가서 살수 있겠습니까. 이 죄인을 이 변방지역에서 살도록 하여 버려 주사이다.]하시고 드디어 압해(押海)에 살았다.

그 후 20년이 지나매 당나라로부터 [본국(本國)으로 환국(還國)하라]는 황제의 분부가 있었으나, 공(公)께서 글을 올리어 사양하는 말씀이 [신(臣)이 나이 많고 병든 몸이라 임의(任意)로 배를 타 고 본국(本國)으로 돌아가 임금께 나아가 뵈옵지 못하오나 이 나라(신라를 말함)도 또한 예의를 지키는 나라이오니 신(臣)을 용서하시와 이 나라에서 마음 편히 살수 있도록 해주시면 심히 다행 이겠아오니 인자하옵신 성의(聖意)로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하다.]

상소(上疏)하여 또 다시 임금의 글이 내려 귀국하라는 칙명(勅命)있으시되 또한 사양하여 가로되, [신(臣)은 이미 나이 장차 백세(百歲)에 이르러 늙고 병들어 영결(永訣)할 시기(時期)가 아침이 아니면 저녁이 될까하온 즉 임의로 본국(本國)에 나가 뵈올수 없아오니 이 신(臣)을 놓아주시면 심히 다행할 것이니 인자하신 마음으로 널리 살펴 주시옵소서.] 하고 끝까지 본국(本國) 당나라에 돌아가지 않으시고, 당소종(唐昭宗) 경복(景福)2년(서기 893년) 신라 진성여왕 3년 계축(癸丑)3월 1일에 압해(押海)에서 이 세상(世上)을 마치시니 향년(享年) 94세이시며, 묘(墓)는 압해 정승동에 있다.

  

 

   당천자(唐天子) 증아시조(贈我始祖) 대양군(大陽君) 직금시(織錦詩)

 

[ 역문 (譯文) ]

비단으로 짠 시의 원본은 지금 동복남치 정석복씨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 이른다. 수성(壽星:남극성으로 노인성이라 함)의 광채는 밝게 남족 하늘을 비추어 밝게 군(君:대양군)의 집 대모연(玳瑁筵:큰 거북으로 장식한 화려한 잔치자리)을 보여주고 학을 타고 멀리서 온 구름밖 의 손님은 란참(鸞:수레방울과 곁말-즉 귀인을 이름)을 동중선(洞中仙:신선)이 웃으며 끄는구나 봄바람은 또한 요지(瑤池:보배로 된 연못)의 과일을 익히며, 향기로운 눈발은 일찌기 옥정(玉井: 옥으로 된 우물)의 연꽃을 피우고, 비단으로 아름다운 시를 내니 오색을 이루며, 높은집 벽에 걸 어 장수(長壽:오래 삶)를 축원하네.

  

 

   오성군(筽城君) 휘(諱) 열도(烈道) 행장(行狀)

    

[ 역문 (譯文) ]

오성군(筽城君)의 휘(諱)는 열도(烈道)니 대양군(大陽君)의 제일자(第一子)라. 당(唐)나라 헌종 원화(憲宗 元和) 4년 기해(己亥)(서기 819년) 3월 18일에 경사(京師)에서 생(生)하시다.

 

문종(文宗) 태화(太和) 8년 갑인(甲寅)(서기834년) 8월에 문과(文科) 제삼(第三)에 오르시니 그때 나이 16歲라. 태화(太和) 9년 을묘(乙卯)에 태학관시관(太學館試官)을 하시고 11월에 진현관태학사 (進賢館太學事)를 하시고 개성(開城)원년(元年) 정월(正月)에 내공봉(內供奉)을 하시고 6월에 보문 각부학사(寶文閣副學士)를 하시고, 12월에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를 하시고 개성(開城)2년 2월에 예문관태학사(藝文館太學士)를 하시고, 대중조(大中朝)에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대양군 (大陽君)을 모시고, 신라(新羅)에 오시다.

 

헌안왕조(憲安王朝)에 공(功)이 유(有)하여 오성군(筽城君)을 봉(封)하시다. 당(唐)나라 애제천우(哀帝天祐) 2년(서기 905년)에 졸(卒)하시니, 수(壽)는 87이요, 묘(墓)는 압해 봉수산하(押海烽遂山下) 군암동 자좌(子坐)에 계시다.

  

 

   금성군(錦城君) 휘(諱) 응도(應道) 행장(行狀)

 

[ 역문 (譯文) ]

금성군(錦城君)의 휘(諱)는 응도(應道)니 대양군(大陽君)의 이자(二子:오성군의 아우)시다. 당(唐) 목종(穆宗) 장경(長慶) 2년 임인(壬寅)12월 20일에 경사(京師)에서 생(生)하시다. 문종(文宗) 개성(開城)3년(서기 838년) 무오(戊午) 3월에 문과(文科)에 장원(壯元)하시고 4월에 태자궁설서(太子宮說書)를 하시고, 무종(武宗) 회창(會昌)4년 갑자(甲子) 8월에 중시(重試) 장원 (壯元)을 하시고, 선종(宣宗) 대중조(大中朝)에 우부상서(右部尙書)로써 대양군(大陽君)을 모시고 신라에 오시다. 헌안왕조(憲安王朝)에 유공(有功)하여 금성군(錦城君)을 봉(封)하다.

당(唐)나라 애제천우(哀帝天祐) 6년(서기 909년) 기사(己巳) 6월 18일에 졸(卒)하시니, 향년(享年) 88歲요, 묘(墓)는 대양군묘(大陽君墓) 좌강(左岡)계좌원(癸坐原)에 계시다.